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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법률] 정당방위
2025-03-05 hit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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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법률

정당방위

이재교

세종대 법학부 교수(변호사)


밤에 골목길에서 여성이 생면부지의 남자로부터 강제로 키스를 당해 남성의 혀를 물어 1.5cm 절단한 사건에 대한 재심에서 대법원은 무죄취지로 판결했다(대법원 2024. 12. 18. 선고 2021모2650 결정). 1964년 사건 당시 이 여성은 중상해죄로 구속돼 유죄판결을 받았고, 강제 키스를 한 남성은 불기소되었는데, 60년 만에 재심을 신청한 것이다. 성추행 피해자가 오히려 처벌받았으니 터무니없는 처사였음에도 당시 언론은 이 판결을 옹호했다. 늦은 감은 있지만 60년 만에 정당방위가 인정돼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대법원은 이미 1989년에 거의 동일한 사건에서 정당방위를 인정했으니(대법원 1989. 8. 8. 선고 89도358 판결) 법원이 그다지 시대착오적이라 할 수는 없겠다.


여기서 ‘정당방위’는 타인에게 피해를 입혔더라도 (1)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2)상당한 행위일 경우 범죄로 인정하지 아니하는 제도다. 다시 살펴보자면 정당방위는 ‘현재’의 부당한 침해에 대항하는 행위여야 한다. 영화에서 악당이 총을 쏘려는 순간 주인공이 먼저 총을 쏘는 것이 전형적이다. 그러나 의붓아버지로부터 장기간에 걸쳐 성폭행을 당하다가 남자 친구와 함께 잠든 아버지를 죽인 행위는 현재의 침해에 대항한 행위가 아니므로 정당방위가 될 수 없다(대법원 1992. 12. 22. 선고 92도2450 판결).


다음, 정당방위는 ‘상당’해야 한다. 즉, 자신을 방위하기 위한 행위라 하더라도 지나친 공격이면 정당방위로 인정될 수 없다. 논란이 된 사례로 2014년, 심야에 거실에 침입한 도둑을 발견하고 주먹으로 때려 쓰러뜨린 후, 신고를 위해 자리를 떴다가 돌아왔을 때 쓰러진 절도범이 일어나려고 꿈틀대자 빨래건조대 등으로 머리를 마구 때려 의식불명에 빠뜨렸을 뿐만 아니라 9개월 후 사망한 사건에 대하여 법원은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아니한 사건이 있다. 처음에 때려서 쓰러뜨린 점은 상당한 범위에 속한다고 인정되겠지만, 이미 쓰러져서 단지 일어나려고 꿈틀거리는 상황에서 건조대까지 사용해 심하게 때린 부분은 상당한 범위를 벗어났다고 봤기에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은 것이다. 


60년 전 법원이 강제 키스를 당한 피해 여성을 중상해죄로 처벌한 이유 역시 상당성을 벗어났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성보다 완력이 훨씬 약한 18세 여성이 밤에 인적이 드문 곳에서 강제로 키스를 당하는 급박하고 당혹스러운 상황에서 혀를 깨무는 것 말고 그 성폭행에서 벗어날 방도가 과연 있었을지 생각해 보면 지나치다고 보기는 어렵다. 남성을 불구로 만든 것에 초점을 두었던 것이니 당시와 현재의 법인식에서 현격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이 사례는 이례적이라 하더라도 실상 우리나라 법원은 정당방위를 상당히 좁게 인정한다. 상대방이 칼로 찔러 이를 빼앗아 상대방을 찌른 사례, 이혼 소송 중인 남편이 찾아와 가위로 폭행하면서 변태적 성행위를 강요하는 데에 격분하여 칼로 복부를 찔러 사망하게 한 사례, 이유 없이 집단구타를 당하다가 곡괭이 자루를 마구 휘둘러 1명이 사망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가한 사례 모두 법원은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아니하였다.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은 싸움이다. 흔히 상대방이 먼저 때려서 반격하였으니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러한 싸움에서는 누가 먼저 때렸는지, 누가 먼저 흉기를 들었는지 따질 것도 없이 정당방위가 인정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드라마와는 다른 것이다. 싸움은 속칭 쌍피 사건으로 모두 처벌받는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싸움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