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법률
증여한 집을 돌려받을 수 있는가?
세종대 법학부 교수(변호사)
이재교
한 노모의 아들의 성화에 약속을 믿고 아파트를 넘겨주었다가 후회 하면서 되찾을 수 없겠느냐는 상담 의뢰를 받았다.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를 넘겨주면, 잘 모시는 건 물론 매달 용돈도 넉넉하게 주겠 다고 철석같이 약속하기에 전 재산인 아파트를 아들에게 넘겨주었 더니, 아들 내외가 처음에는 잘 모시는 듯하다가 몇 년 지나자 살림이 어려워졌다는 핑계를 대면서 용돈은커녕 심지어 구박한다는 하소연이었다. 배신감에 몸을 떨면서 아파트를 되찾을 방법을 알려 라고 했다.
여기서 아파트를 넘겨준 건 증여고, 증여는 계약의 일종이다. 증여한 물건을 되찾기 위해서는 증여계약을 해제해야 하는데, 계약을 일방적으로 실효시킬 수는 없다. 증여계약을 물리려면 법이 정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
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사유로 민법은 3가지를 규정하고 있다 (민법 555~557조). 첫째, 증여한다는 내용을 서면으로 작성하지 아니했다면, 해당 증여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제할 수 있다. 둘째, 증여를 받는 사람이 증여를 한 사람이나 그 배우자 등에게 범죄를 저질 렀거나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는 경우다. 몇 해 전 방영한 드라마 <이 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왔던 동씨 삼형제 편에서 증여받은 큰형이 증여한 동생과 그의 딸을 폭행했다가 증여계약이 해제된 사건이 이에 해당한다. 셋째, 증여를 한 사람의 재산 상태가 악화돼 생계를 위협받을 상황에 이를 경우다.
이에 서두에 언급한 사례는 위 3가지 모두 해당한다. 부모 자식 사이에 넘겨주겠다는 계약서를 썼을 리 없고, 자식은 부모를 부양할 의무가 있음에도 구박한다니 부양의 의무를 게을리하는 것이며, 전재산을 넘겼으니 생계를 위협받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3가지 사유는 아직 증여를 이행하지 아니했을 경우에만 적용된다. 이미 아파트를 넘겨줬으므로 위 3가지 해제 사유로는 구제받을 수없다. 안타깝지만 아파트를 되찾을 방법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용돈을 주겠다”, “잘 모시겠다”는 등의 약속 위반을 이유로 아파트를 되찾을 수는 없을까? 역시 어렵다. 우선, 이런 약속을 서면으로 받아놓았을 리 없으니 증명하기 어렵다. 약속 위반을 시인할 자식이라면 애초에 약속을 위반하지도 않았을 테다. 설령, 어떻게 증명한다 하더라도 그 약속이 법률상 대가나 조건으로 인정되기 어려워서 증여계약을 해제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자식이 부모를 기만해 사기죄를 범했다고 주장해도 인정받기 어렵다.
부모가 자식에게 아파트를 증여하는 건 엄연히 거래고 법률 행위다. 거래나 법률 행위는 서면으로 작성하는 게 원칙이다. ‘부모와 자식 간에 믿어야지 어찌 계약서를 쓰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누구든 위 노모처럼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전 재산을 넘겨주는 중대한 거래에 계약서를 쓰지 않는다면 어떤 경우에 쓰겠는가. 적게는 수억 원, 많게는 수십억 원이 오가는 거래이니 계약서를 쓰면서 자식의 약속을 적는 행위가 과하다고 할 수는 없다.
아파트를 주겠다는 내용을 서면으로 작성하면서 약속 위반 시에는 아파트를 반환한다는 구절만 넣으면 안전하다. 자식으로서도 약속을 어길 경우 아파트를 돌려줘야 한다면 어떻게든 지키려고 노력할 테니, 이런 계약서는 자식의 도리를 다하도록 보장하는 셈이 돼 자식에게도 좋은 지침이 될 수 있다. 이게 싫다면 약속이든 계약서든다 그만두고, 주택연금에 가입해 사망할 때까지 연금 받으면서 혼자 사는 게 상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