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종 동문(무용과·13)
▲최호종 동문(무용과·13)
최호종 동문은 현재 국립무용단의 무용단원이다. 국립무용단은 1962년 창단된 국립극장의 전속단체이다. 50여 명의 무용수 중 남자 단원으로 활동하는 최호종 동문을 만났다.
Q. 현재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A. 원래 국립무용단 공연 작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공연들이 잠정 연기됐다. 어쩔 수 없이 휴식을 취하며 자기계발 겸 개인연습을 주로 하고 있다.
Q. 평소 일과는 어떠한가?
A. 아침 10시까지 국립극장으로 출근한다. 그리고 전 단원이 ‘국립기본’을 비롯한 다양한 레파토리를 연습한다. 50여 명의 무용수가 바둑판 배열로 30분 동안 레파토리를 진행한 후 오후 5시까지 본격적인 공연 연습을 진행한다. 공연마다 캐스팅이 달라서 각자 다른 작품을 연습하기도 한다.
Q. 언제 무용수가 되려고 했는가?
A. 고등학교 때까지는 연극배우를 지망했다. 3학년 때 연극작품에 있는 작은 무용 파트를 맡아 준비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극단의 연출을 맡은 류미선 선생님께서 나의 무용 재능을 알아봐 주셨다. 무용을 시작하기에는 늦은 시기였지만 3학년 2학기 때 무용으로 전향하게 됐다.
Q. 국립무용단에 입단한 계기가 있는가?
A. 입시를 준비하면서 우리나라 최고의 한국무용단인 국립무용단의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남성 무용수의 역동적인 춤사위와 고목 같은 에너지에 완전히 매료됐다. 그 후로 국립무용단의 단원이 되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로 하게 됐고, 그것이 지금까지 무용을 계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 셈이다.
Q. 무용수를 준비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었는가?
A. 처음에는 대학 수업을 따라가기도 벅찼다. 한 수업에서 전통 춤사위의 완성도가 중요한 실기 시험을 낸 적이 있었다. 동기들이 작품의 높은 완성도를 보일 때 나는 순서를 외워갔다는 것만으로 높은 학점을 받았다. 남들보다 한참 늦게 시작했지만 춤을 추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는 생각으로 매일 연습에 임했다. 열등감에서 오는 독기가 아니라 부족함을 매워가는 자신감이 연습에 큰 힘이 됐다.
Q. 보람될 때가 있는가?
A. 열심히 노력한 끝에 무대 위에 서는 모든 순간이 보람차다. 무대와 하나가 되고 작품의 주제와 의미를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가장 보람찬 순간은 내가 과거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가 무대를 보고 무용수를 꿈꿀 때인 것 같다.
Q. 일과 외에 하는 활동이 있는가?
A. 평소에 연습을 많이 하는 편이라 일과가 끝난 5시 이후에도 연습실로 향한다. 연습하면서 무용 동작을 기록하던 것이 댄스 필름을 제작하는 계기가 됐다. 재미로 시작했던 댄스 필름이 점점 규모와 전문성이 커졌고 현재는 유튜브 채널까지 개설한 상태다. 무대 위에서는 순수예술을 추구하는 예술가가 되지만 댄스 필름 영상에서는 무용의 대중화를 목표로 하며 활동하고 있다.
Q. 대학 생활은 어떠했는가?
A. 비어있는 시간에도 틈틈이 고독하게 연습을 하는 순간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동기들과 함께 열심히 공연하고 연습하던 순간들도 많았지만, 같이 어울리는 시간은 적었다. 대회 준비에 온 열정을 쏟았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Q. 대학 시절 기억에 남는 대회가 있었는가?
A. 2학년 때부터 4학년 때까지 무용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동아무용콩쿠르에 총 3번 도전했다. 제44회 동아무용콩쿠르에서 동상, 제45회 대회에서 은상, 제46회 대회에서 금상을 차례로 받았다. 상의 등급이 차례로 올라가는 모습에서 욕심을 부리지 말고 지금처럼 계속 노력하라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한가?
A. 항상 최고의 무용수를 꿈꾼다. 앞으로도 다양한 주제의 작품을 통해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무용수로 활동하고 싶다. 현재는 지금까지 해온 대로 차근차근 작품 활동을 이어나갈 생각이다. 무엇보다 공연 활동과 개인 유튜브 제작 활동을 통해 꾸준히 나의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실력을 키워나가고 싶다.
취재/ 김주원 홍보기자(wndnjs827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