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욱 교수
“이 일이 너무 즐겁고 잘 맞아요. 유튜브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요.”
어릴 적 마음 한편에 품었던 탐험가의 꿈을 실제로 이룬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발 딛는 도시의 곳곳이 탐험의 대상이라면 삶은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미지의 세계일지도 모른다. 교수 생활부터 유튜브 채널 ‘김영욱의 도시 탐험대’ 운영, ‘스페이스 신택스 코리아’ 창업에 이르기까지 공간 구조를 중심으로 삶과 도시의 동선을 설계하는 건축학과 김영욱 교수를 만났다.
Q.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A. 건축학과에 재직 중인 김영욱 교수이다. 학생들에게 ‘도시 설계’와 ‘공간과 사회’라는 과목을 가르치고 있고, 스페이스 신택스(space syntax)를 공부했다. 공간 구조를 분석하고, 분석된 숫자로 사회·문화·경제 등 공간적 현상을 해석하는 일을 해 왔다.
Q. 공간 구조란 무엇인가?
A. 문장에도 주어, 목적어, 서술어처럼 구조가 있듯, 도시와 건물에도 공간 구조가 있다. 이러한 공간 구조를 보면 사회적인 논리가 보인다. 도시에서는 길을 따라 움직이고, 건물에서는 복도를 따라 사람들이 움직인다. 강의실을 예로 들어 보자. 예전에는 교수가 앞에 서 있고, 반대편에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지식 전달이 일방적으로 이뤄지지만, 교수와 학생 사이는 대등하지 않다. 만약 교수가 원탁에서 강의를 한다면 어떨까? 심리적으로 편안하고, 대등한 관계가 만들어진다.
Q. 공간 구조가 끼치는 사회적인 영향이란?
A. 아파트 단지를 예로 들어 보자. 공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공간의 구조에 의해 예견되어 있다. 아파트 단지는 광장과 같은 열린 공간이 상당히 많지만, 실질적으로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 차를 지하 주차장에 주차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다다르는 여정까지 사람들이 서로 만나지 못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공간에서 광장은 보기에만 좋은 시원한 느낌의 공간으로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사회적 고립이 심각한 병리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고립을 유발한다. 소통이 필요함을 슬로건처럼 외치지만 소통이 일어나는 공간을 원하지 않는다.
Q. ‘건축학’ 하면 떠오르는 느낌과는 다른 것 같다.
A. 건축에서는 일반적으로 물리적 형태를 어떻게 디자인하는지가 중요하다. 그러나 공간 구조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경제, 문화 전반에 민감하게 영향을 미친다. 이제는 우리 일상에 밀접하게 와닿는 요소를 논할 필요가 있다.
Q.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 감사하게도 우리 대학원생들이 먼저 제안했다. 학생들이 수업에 등장하는 여러 건물, 도시 이야기를 영상으로 기록하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영상 기록으로 남는다는 점이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다. 그렇지만 올바른 건물과 좋은 건축,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연구하고 생각해 온 것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만일 우리 동네가 안전하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고독사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 꼭 전문가가 아니어도 시청자들이 일상적인 차원에서 우리의 공간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랐다.
Q. 영상 편집은 제자들이 돕는가?
A.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한다. 썸네일이나 질문지도 직접 만드는데, 특히 채널 초반에 올라간 영상은 사전 질문지도 없이 현장에서 바로 질문했다. 그렇지만 학생들과 함께 평소에 늘 생각하던 문제이고, 익숙하게 말하던 주제여서 괜찮았다.
Q. 콘텐츠의 주제나 영감은 어디서 얻는가?
A. 앞서 말했듯, 건축학과에서 ‘도시 설계’와 ‘공간과 사회’라는 과목을 가르친다. 학부 수업이니 이론보다는 공간과 권력, 공간과 범죄, 공간과 소통 등 여러 가지 사례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영감은 이렇게 수업하며 생각난 주제나 답사 현장에서 얻곤 한다. 책을 읽으며 떠올릴 때도 있다. 그리고 우리 대학원생들이 자발적으로 주제를 60개씩 리스트업을 해 오기도 한다.
Q. ‘스페이스 신택스 코리아’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부탁한다.
A. 2023년 10월에 교내 실험실 창업으로 설립했다. 공간 구조 분석을 통해서 건물이나 도시 공간이 활성화되도록 컨설팅한다. 공간 구조를 분석하면 어느 공간에 사람이 많이 몰릴지를 예측할 수 있는데, 객관적인 통계와 수치에 기반해 공간의 배치와 동선을 설계하는 컨설팅을 한다. 이를 활용해서 장사가 잘되는 입지와 그렇지 않은 입지,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공간 등을 미리 파악할 수 있다.
Q. ‘스페이스 신택스 코리아’를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
A. 우리 연구실 ‘스페이스 신택스 랩’에서 창업 이전에 병원, 코엑스, 롯데타워 저층부의 쇼핑 공간, 영등포 타임스퀘어 등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했다. 데이터가 쌓이다 보니 여러 대기업에서 우리 솔루션을 활용하게 되었고, 자신감이 붙어서 시작하게 됐다.
Q. 강의와 유튜브, 창업까지 정말 바쁜 삶을 살고 있다. 평소에 시간 관리는 어떻게 하는가?
A. 이 질문을 달리 말하면 “당신은 무슨 재미로 사느냐”이다. 시간 관리는 따로 하지 않고, 즐거운 일을 그냥 한다. 학생들과 프로젝트하고, 유튜브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이 너무 즐겁다. 영상의 썸네일을 어떻게 바꿀지, 다음에는 어느 동네를 가볼지 말하는 것 따위이다. 아무래도 다른 분들에 비해서 이런 일에 투입하는 시간이 많다. 이미 즐거운데 굳이 다른 곳에서 즐거움을 찾을 필요가 없다.
Q. 이제 막 건축에 관심을 가지는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은?
A. 정기용 건축가의 저서 “감응의 건축”을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정기용 건축가는 화려한 건축보다는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위해 어떠한 건축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굉장히 많이 한 건축가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건축을 처음 시작하는 친구들은 이 책을 읽어 보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전공자가 아니어도 비전공자들도 충분히 읽을 만한 책이다.
Q. 진로 고민을 하는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나도 건축학과 학부생 시절, 진로 고민을 많이 했다. 지금 전공인 스페이스 신택스는 유학 시절 우연히 접하게 됐고,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누구든지 나름대로 생각하는 가치관이 있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은 터닝 포인트가 온다고 본다. 사람마다 잘하는 분야가 있지 않나. 충분히 방황하면 정확히 알게 된다. 자신의 생각과 일이 합치될 때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아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다.
취재/ 이유빈 홍보기자(iyreaso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