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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인영 동문(국립극장 제공, 사진 황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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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인영 동문(국립극장 제공, 사진 황필주)
손인영(무용과·81) 동문은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이다. 손 동문은 무용과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한 뒤 1985년 국립무용단에 입단했다. 2019년 11월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손 동문을 만났다.
Q. 현재 어떤 일을 하는가?
A. 주로 단원들을 관리 감독하는 일을 하고 있다. 국립무용단 작품들도 기획하고 있다. 또한 만든 작품에 대해 단원들과 맞춰보며 공연 준비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11월 공연 예정인 “다녀와요. 다녀왔습니다”라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Q. 감독으로서 힘든 점은 없는가?
A. 감독으로 힘든 점은 없다. 단원들 스스로 자신의 일을 하는 협의체 형식의 시스템이기에 맡은 바 자기 책임만 다하면 된다. 모든 공연 관련 일도 기획팀, 홍보팀 등에서 진행해 감독은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만 하면 되는 것 같다. 대한민국 최고의 무용수와 원하는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이 행복하다.
Q. 무용은 언제 시작했는가?
A. 초등학교 4학년 때 단체관람으로 무용 공연을 봤다. 춤이 황홀해서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이후 무용연구소에 다니는 친구를 따라 춤을 배웠다. 중학교 때에는 고등학교 입학시험 준비를 위해 춤추는 것을 그만뒀다.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진로에 대해 고민하면서 무용을 더 공부하고 싶었다.
Q. 대학생활은 어떠했는가?
A. 대학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했다. 대학시절에는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무용 연습도 많이 했다. 특히 정재만 교수님과 함께 공연을 열심히 준비하느라 대학생활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콩쿠르와 공연 준비로 대학생활 대부분을 학교 연습실에서 보냈다. 대학생활을 보내던 시절은 81~85년이었고 당시 시위가 많았다. 단체 연습이 많아 최루탄 냄새를 맡으며 연습실로 향하곤 했다.
Q. 국립무용단에 언제 입단했는가?
A. 1985년 국립무용단에 입단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한국 최고의 무용수가 모여있는 국립무용단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 때 국립무용단 출신 정재만 교수님으로부터 춤을 배우고 국립무용단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꿈을 이루고 싶다는 열망이 커졌다. 입단 당시 세종대 무용과는 유명했고 열심히 무용을 연습한 덕분에 국립무용단에 입단할 수 있었다.
Q. 국립무용단 활동을 계속했는가?
A. 국립무용단에서 7년간 활동했다. 국립무용단 단원으로 전문적으로 춤을 배우고 많은 공연을 진행했다. 이후 무용에 대한 공부를 더 하기 위해 국립무용단 생활을 그만두고 뉴욕으로 떠났다. 국립무용단을 떠날 때 감독의 자리로 돌아오겠다고 결심했다.
Q. 유학을 선택한 이유가 있는가?
A. 국립무용단에서 중견단원발표회를 진행하면서 안무에 관심을 가졌다. 또한 무용단에 남게 되면 무용수로서 평생 지낼 것 같은 불안함을 느꼈다. 안무가로 성장하려면 더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학 때 배우지 못한 현대 무용과 같은 다양한 무용 공부를 해보기 위해 국립무용단을 그만두고 뉴욕 컬럼비아대 석사과정을 밟게 됐다.
Q. 유학 생활은 어땠는가?
A. 뉴욕에서 지내면서 다양한 공연 활동을 했다. 1997년 진행했던 첫 현대무용 공연이 기억에 남는다. 오디션을 통해 무용수를 모집하고 공연에 필요한 준비를 혼자 했다. 3일간의 공연 동안 사람들이 줄을 서 있어서 놀랐다. 한국에서는 지인의 무용 공연이 아니면 보러 가지 않던 시절이었다. 일반인 관객들이 공연에 와줘서 놀랍고 감사했다.
Q. 유학 후 바로 국립무용단의 예술감독으로 부임했는가?
A. 아니다. 유학 후 서울예술단 무용감독, 인천시립무용단 예술감독 등을 거치면서 실력을 쌓았다. 감독이 되기까지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서울예술단에서 퇴임하고 독립안무가로 활동했다. 작품을 쉬지 않고 만들었지만 무용수를 구하지 못해 힘들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 결과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Q. 취임 이후 어떤 작품을 선보였는가?
A. 취임 이후 첫 안무작 ‘다섯 오’ 공연을 이번 9월에 마쳤다. ‘다섯 오’는 인간의 욕심으로 발생한 지구 온난화가 다시 회복되기를 바라는 작품이다. 기후 변화를 비롯한 다양한 환경문제와 지금의 코로나19 등은 자연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아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음양오행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서 자연을 회복시키자는 것이 작품의 주제이다. 코로나 상황에 맞게 역병을 처용의 벽사의식을 활용해 이겨내자는 내용도 작품에 담겨있다.
Q. 기억에 남는 무대가 있는가?
A. 뉴욕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황사’라는 작품을 진행했다. 지금 세종대 현대무용 교수인 김형남 교수도 당시 작품의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큰 공연을 처음으로 준비해서 힘들었지만 많은 관객 앞에서 준비한 공연을 잘 마쳤다는 생각에 의미가 컸다.
Q. 앞으로의 계획은?
A. 가장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시각적으로도 빠지지 않는 작품을 선보여 국립무용단의 위상을 높이고 싶다. 좋은 콘텐츠 제작에 몰두하고 작품을 전략적으로 세계시장에 판매하려 한다. 한국의 문화는 저평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만 잘 제작하면 세계시장에서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제작한 작품의 해외시장 진출에도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Q. 후배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A. 젊은 시절 많이 도전해봤으면 좋겠다. 인생에서 젊음은 짧은 순간이었고 머뭇거리면 귀중한 순간을 놓치게 된다. 도전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일을 하든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전에 대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 해보길 권한다.
취재/ 정윤석 홍보기자(danniel2@naver.com)